약초, 산야초

“약초를 알면 산 오르는 즐거움 더욱 커져요!” .

신융일 2019. 8. 26. 20:00

약초를 알면 산 오르는 즐거움 더욱 커져요!” .

 





김우영, 유초화씨 부부와 함께

체험한 늦가을 약초산행
“우리나라 산과 들에 약초가 가득합니다.

 길옆에 누운 잡초처럼 보이는 풀도 알고 보면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걸 잘 모를 뿐이죠.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면 산에 오르며

 어렵지 않게 약초를 볼 수 있습니다.” .



  1어지럽게 엉킨 덩굴 속의 잎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있는 김우영씨.


김우영(53)·유초화(55)씨.

“사실 잎이 시드는 늦가을은 약초산행이 쉽지 않습니다.

 열매도 다 떨어지고 줄기만 남은 것들도 많아서

 특히 초보자들은 약초 구분이 어렵거든요.

하지만 이 시기에 채취한 약재의 효능이 가장 좋아요.”

오늘 목적지는 잣나무가 가득한 경기도 가평의 야트막한 산.

등산객이 많은 유명 산이나 산림공원 지역은

약초산행에 적합지 않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은 약초가 거의 없고

공원 구역은 통제가 많기 때문이다.

인적이 드문 깊은 산골로 가면 더 좋겠지만

시간 관계상 가까운 곳으로 대상지를 잡았다.

“가평군 일대는 산이 깊어 예로부터 약초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도로망이 좋아지며 수도권에서 가까운

가평 지역이 가장 먼저 초토화됐어요.

 이제 산삼이나 오래된 하수오 같은

귀한 약초들은 보기 힘들어요.

 사람들이 무분별하게 작은 것까지 캐가기 때문이죠.

약초 하는 분들도 상식을 지켜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2 빨간 열매가 달린 칠해목.

3 가평의 잣나무 숲을 걸으며 지형을 설명하고 있는 김우영, 유초화씨.


산을 알고 공부해야 약초도 보인다
산자락 아래 차를 세우고 배낭을 꺼냈다.

약초산행이라고 준비가 유별난 것은 아니었다.

부부는 일반적인 등산객과 똑같은 차림을 하고

 산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들의 오랜 약초산행 경험에 따르면

산에서는 가능한 튀지 않게 옷을 입는 것이 좋다.

임산물 채취에 민감한 현지 주민들과의 마찰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약초산행이라고 다를 것은 없어요.

산을 오르며 자연과 교감하는 행위죠.

 더불어 우리 땅의 약초를 보는 재미까지 더하니

 즐거움이 배가되죠.

하지만 주변을 돌아보는 여유도 없이 오직 약초에만

 목을 매는 동호인들을 보면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이 부부는 산행 중에 경치 좋은 곳이 나오면

느긋하게 쉬면서 자연을 즐긴다.

한여름 계곡에서는 땀을 닦으며 여유를 갖는다.

 목표가 약초라고 하지만 자연에서 얻는

 즐거움이 더 크기 때문이다.

 욕심 없는 사람이 심을 잘 본다는 옛말도 있다.

실제로 김우영씨는 “욕심을 가지고 달려들면

 약초 보기가 더 힘들다”고 말한다.

“마음을 비우면 산행도 즐겁고 힘도 들지 않습니다.

 경쟁하듯 약초를 보러 다니면

스트레스가 심하고 여유를 가질 틈이 없어요.

 물론 목표로 한 약초를 만나면 더욱 재미가 있겠죠.

그러나 막연한 욕심보다 꾸준한 노력과 공부를

하다 보면 운도 따라오는 것 같습니다.”

마을길이 끝나고 산자락의 밭둑을 걸어갈 때

 유초화씨가 땅에 누운 풀을 가리켰다.

옛날부터 민간요법으로 많이 사용했던 금강초였다.

수족냉증과 불임에 좋다고 알려진 풀로 동호인들

사이에서는 만병통치약으로 불린다고 했다.

 이슬 맞은 작은 풀잎 하나도 전문가의

날카로운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숲으로 접어들어 희미한 오솔길을 따라 능선으로 향했다.

얼기설기 뒤엉킨 수풀을 지날 즈음 또다시 유초화씨가

 “여기 관절에 좋은 우슬이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여러 개의 덩굴이 뒤섞인 속에서

찾아낸 줄기를 보여 줬다.

1 불임치료에 좋다고 알려진 금강초.

 2 피로회복에 좋은 약초인 오갈피 열매.


“우슬 뿌리와 닭발을 함께 넣어

 졸인 것을 식히면 묵처럼 굳는데

이것을 장기간 섭취하면 관절 통증에 효능이 있습니다.

전국에 분포되어 있지만 그렇게 흔한 약초는 아닙니다.

잎은 차로 먹기도 합니다.”

우슬 바로 옆에는 간에 좋다는

 ‘쇠비름’도 조용히 누워 있었다.

 유씨는 “밭이나 논둑, 길옆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잡초지만 장기에 좋은 약성을 지니고 있다”면서

“그러나 도로 옆의 쇠비름은 중금속에 오염되어

있으므로 절대 섭취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불과 몇 백 m밖에 걷지 않았는데도

두 사람의 입에서 약초 이야기가 줄을 이었다.

그동안 산에서 흔히 보며 밟고 지나가던 잡초들이

뭔가 약효를 지녔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유초화씨는 가족의 건강을 위해

 취미 삼아 약초를 공부하기 시작해,

 지금은 카페를 대표하는 전문가 반열에 오르게 됐다.

 남편이자 산행 동료인 김우영씨는 약초를 찾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닌 전략가다.

3 자양강장에 좋은 하수오.

4 우거진 덤불을 헤치며 약초를 찾고 있다.


“약초산행을 즐겁게 하려면 산을 잘 알아야 합니다.

 약초의 특성을 파악하고 지형도를 놓고 공부하다 보면,

어디에 어떤 약초가 있을지 충분히 예상돼요.

해당 지역의 식생과 환경까지 보면

 더욱 확률을 높일 수 있습니다.”

그가 가평의 잣나무 숲을 지목해 찾은 것은

 ‘하수오’를 보기 위해서다.

 하수오(何首烏)는 흰머리를 검게 해주는 것으로

 이름난 약초다.

 자양강장에 좋아 신장은 물론 심장과 간 등

 오장을 튼튼하게 해주는 귀한 약재다.

예전에는 야산에서도 쉽게 볼 수 있었지만,

 무분별한 채취 때문에 지금은 씨알이

 굵은 야생종은 구경하기 쉽지 않다.

“예전에는 가평에도 하수오가 많았는데 지금은

씨가 말라서 좀처럼 좋은 녀석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도 지형적으로 하수오가 서식할 수 있는

 장소는 있습니다.

침엽수 숲이 대표적인 곳이죠.

 바람이 모이는 골짜기의 잣나무 숲 아래쪽에

 하수오가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날아다니는 하수오 씨앗이 그물 같은 침엽수 잎에

걸린 뒤 비나 눈에 떨어져 발아하면 군락이 형성됩니다." 

 

5 하수오 줄기에 형성된 마디 또한 특이하다.

6 무릎 관절에 좋은 우슬 줄기.

 7 덩굴 숲 속에서 하수오를 발견한 김우영, 유초화씨 부부.

8 길옆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쇠비름


약초 볼 때도 자연 보존이 우선
김우영씨는 약초를 주먹구구식으로 찾는 법이 없다.

 언제나 과학적으로 분석해서

 정확히 분포지역을 파악한 뒤 공략한다.

 이런 철저한 전략 덕분에

이 부부는 ‘꽝’이 없는 팀으로 유명하다.

덕분에 한 수 배우고자 하는 이들이 언제나 줄을 선다.

하지만 부부는 약초를 배우겠다는 사람을

받을 때는 늘 심사숙고한다.

“카페 동호인이나 지인들과 함께 다니며

 약초를 알려 주곤 했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약초를 나눠 준다는 소문이 나며

 모이는 사람이 늘어났습니다.

 그러다 보니 신의를 저버리는 이들도

 생겨나 실망한 적이 많았습니다.

한동안 다른 사람과 인연을 맺지 않으려고도 했지만

 이제는 마음을 열기로 했습니다.

 좋은 사람들과의 인연도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전망이 좋은 능선에 서서 김우영씨에게

 주변 산세와 약초의 서식처에 대한 설명을 듣고

산허리를 따라 하수오 찾기에 들어갔다.

산자락에는 낙엽이 쌓이기 시작했고,

이미 덩굴식물의 잎도 누렇게 물들어 있었다.

 약초를 찾기 쉬운 환경은 아니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눈을 역시 달랐다.

“여기 수풀 속에 하수오 줄기가 있습니다.

 아직 잎이 잘 달려 있어서 쉽게 찾을 수 있었어요.

옆에는 작년에 올라왔던 마른 줄기도 보입니다.

완전 덩굴 속이라 여름에는

 절대 못 찾을 장소에 있었군요.

덕분에 지금까지 손을 타지 않고 온전히 남아 있네요.”

어지럽게 얽혀 있는 수풀 속에서 하수오 잎과 줄기를

 정확하게 구분해 내는 능력은

하루 이틀에 생길 수 없는 것이다.

 이들은 1년이면 200일 이상 약초를 보기 위해

 산행을 하고 있다.

거의 매일 산에 다닌 것과 다름없다.

 그 정도로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것이다.

“약초 찾는 것을 알려 주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물론 경험을 통해 체득해야 하는 부분도 있지만

오히려 기술적인 측면은 전수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약초를 대하는 올바른 마음가짐과 행동을

가르치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그는 늘 주변 사람들에게 ‘약초산행을 하는 사람이

 자연보호에 앞장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린 개체는 절대 손대지 말고,

흙은 물론 캐낸 돌까지 반드시 제자리에

 위치시켜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토종 약초 보존을 위해 정기적으로

 씨앗을 뿌리는 일도 추진하고 있다.

말은 쉽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어려운 것들이다.

산비탈에서 하수오를 보고 내려오는 길에

 해독기능이 탁월한 ‘칠해목’과 피로회복에

좋은 ‘오갈피’도 만날 수 있었다.

 그동안 산에 가면 몸에 좋은 약초가 많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이렇게 주변에 약초가 널려 있었는지 미처 몰랐다.

 역시 전문가와 함께 산을 오르니 배울 점이 많았다.

 깊은 산속에서 산삼을 캐는 것도 좋겠지만,

 우리 주변의 약초를 알아가는 것도 정말 즐거운 일이었다.

늦가을에 경험한 약초산행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봤다.